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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변화와 성장의 기적을 말하다


 



(스포일러 다수 포함) 

<아무도 모른다>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지극히 냉소적인 시선으로 고립된 아이들의 모습을 그렸다. <공기인형>에서는 몸이 텅 빈 인형을 통해 인간 내면의 공허함을 표현했다. 그러던 그가 세상에서 가장 포근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기적>(이하 <기적>)에서 그는 기적을 꿈꾸는 아이들을 향해 두 팔을 활짝 벌리고는, 억지로 강요하거나 꾸짖는 일 없이 그저 묵묵히 따뜻한 시선으로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본다. 

가장으로서의 역할은 뒤로 한 채 인디음악에 빠져있는 아빠와 그런 아빠를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의 이혼으로, 형 코이치(마에다 고키 분)는 가고시마 외가에서 엄마와 함께, 동생 류(마에다 오시로)는 후쿠오카에서 아빠와 함께 살게 된다.

영화 초반부부터 코이치는 언제 폭발할 지 모르는 사쿠라지마의 화산재가 휘날리는 곳에서 모여 사는 사람들을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며 투덜댄다. 코이치에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은 한두 개가 아니다. 동창회에 나가는 엄마(오오츠카 네네 분)에게 엄마의 옛 첫사랑 이야기를 꺼내는 외할머니도 이해할 수 없고, 아빠와의 생활에 완벽 적응해서 명랑하게 지내고 있는 동생 류는 더 이해할 수 없다. 세상이 온통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만 가득 차 있던 그러던 어느 날 코이치는 우연히 타스쿠(하야시 료가 분)와 마코토(나가요시 호시노스케 분)가 나누는 엄청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코이치와 아이들은 새로 개통한 고속철도에서 상하행선 열차가 시속 260km로 처음 스치는 순간 기적이 이루어진다는 그 근거 없는 전설(과학 실험시간에 이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사실이 꽤 재밌다. 과학실에서 선생님이 보여주는 따분한 실험보다는 기적 이야기가 아이들을 훨씬 설레게 한다.)에  각자의 희망을 걸어보기로 결심한다. 코이치는 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쿠라지마가 폭발해 엄마와 자기가 가고시마를 떠날 수밖에 없게 되어 다시 온 가족이 모여 살 수 있게 해달라는 소원을 정하고, 동생 류에게도 이 모든 사실을 전한다.

엄마 아빠의 재결합을 소원하는 코이치와, 늘 같은 이유로 싸우던 엄마 아빠를 보는 것보다는 차라리 지금이 더 좋은 것처럼 느껴지면서도 형의 소원을 따르겠다고 여행에 나선 동생 류의 이야기가 가장 중심에 있다. 그러나 영화는 비슷한 나잇대의 아이들의 꿈에도 정성껏 귀기울인다. 좋아하는 선생님과 결혼하는 것이 소원이라는 타스쿠, 죽은 강아지 마블을 살리고픈 마코토, 같은 반 라이벌 친구를 이기고 멋진 여배우가 되고 싶은 메구미(우치다 카라 분), 그림을 잘 그리고 싶은 칸나(하시모토 칸나 분), 달리기를 잘하고 싶은 렌토(이소베 렌토 분)까지 모두 여행에 따라나서는 자세가 자못 진지하다. 구마모토의 어느 터널 위에서 각자의 소원을 색색깔의 크레파스로 열심히 써 넣은 깃발을 꽂아두고 열차가 교차하는 순간 다같이 목청껏 크게 각자의 소원을 말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기대했던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마코토의 강아지 마블도 살아나지 않았다. 이 부분이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교차하는 열차를 바라보며 소원을 빌면 기적이 일어날 거라는 기대에 부풀어 각기 다른 지역에서 구마모토까지 온 아이들이 전설은 전설이었을 뿐이라는 사실을 각자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시점이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기적은 '일어났다'. 사실 '상하행선 고속 열차가 처음 스치는 순간'이라는 기적의 조건은 곧 남쪽 가고시마에 살고 있는 형 코이치와 북쪽 후쿠오카에 살고 있는 동생 류의 만남을 의미한다. 코이치가 류에게로, 류가 코이치에게로 오는 과정 자체가 곧 그들 스스로도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기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것은 비단 그 둘에게 뿐만이 아니다. 그들의 여행에 동참한 코이치의 친구들 타스쿠와 마코토, 류의 친구 메구미와 칸나, 렌토 모두에게 기적은 공평하게 일어난다.


터널 위에서 내려오면서 마코토는 강아지 마블을 보며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음을 가장 먼저 알아차리지만, 그저 죽은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가고시마에 돌아가 묻어주겠다고 말한다. 강아지를 안고 왜 살아나지 않는 거냐며 떼쓰거나 울지 않는다. 이미 일어난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받아들인 현실에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씩씩하게 살아나가기로 결심하는 것. 그것이 곧 성장이고, 기적이다. 소원을 '안 빌었어. 가족보다 세계를 선택했거든, 미안'하고 말하는 코이치의 얼굴은 그 어느때보다 의젓하다. 각기 다른 꿈을 가진 아이들과 함께한 여행을 통해서 코이치는 불만스러운 현실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만들어가야 할 세계를 생각한다. 류 역시 열차가 지나갈 때는 아빠의 음악이 잘 되기를 빌었지만, 집으로 돌아와 아빠에게 형이 말한 '세계'의 의미를 묻는다. 엄마 아빠의 말다툼을 보지 않고 지낼 수 있는 게 마냥 좋기만 했던 시절의 류가 아니다. 배우가 되고 싶으면서도 늘 라이벌 동료 앞에서 소극적이던 메구미도 엄마에게 도쿄에서 최고의 여배우가 되겠다며 야무진 표정으로 말한다. 배우생활을 접고 후쿠오카에서 가게를 차린 메구미의 엄마는 거대한 도시 도쿄에서 여배우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메구미의 꿈을 지지하지 않았지만, 메구미의 진지한 표정에 더이상 아무말 하지 않는다.

영화의 마지막, 코이치가 집에 돌아오자마다 가방을 던지고 베란다에서 손가락에 침을 뭍혀 바람에 대고는 '음, 오늘은 화산재가 좀 덜하네'하는 부분이 모든 보는 이의 가슴을 찡하게 만들 만큼의 기적이다. 그토록 이해할 수 없다던 화산재 떨어지는 마을 가고시마에서 더 이상 코이치는 불평하지 않는다. 투덜대지도 않는다. 중요한 것은 처해 있는 상황이 아니라 그 상황을 바라보는 자기 자신이라는 깨달음,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들을 이해하고 인정하되 더 큰 세계를 꿈꾸는 자아의 발견, 한층 성숙해진 코이치의 표정에서 기적은 이미 일어났다.

<기적>과 <아무도 모른다>는 둘 다 '아이들'의 영화다. 그러나 두 영화의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 것은 아이들을 둘러싼 '어른들'의 차이다. <기적>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아무도 모른다>의 어른들과 사뭇 다르다. <기적>에는, 겉으로 감정을 격하게 드러내며 '너희를 잘 돌봐줄 수 없어 미안'하다고 눈물 흘리는 어른이나, 그저 길가다 아이들이 귀여워 머리 한번 쓰다듬으며 인자한 양 웃음짓는 이웃 어른도 없다. 무덤덤하게 다들 각자의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아이들을 위한 '은근하면서도 완벽한' 조력자가 되어준다. 코이치의 외할아버지(하시즈메 이사오 분)는 코이치와 친구들의 여행이 어떤 여행인지 알면서도 마치 여행 이후의 아이들의 모습을 이미 알고 계셨던 듯 아이들이 여행날 학교를 조퇴할 수 있도록 학교를 방문한다. 꾀병으로 양호실에 온 코이치와 친구들에게 체온계를 겨드랑이에 문질러 열을 높이라고 말하며 웃음짓는 양호 선생님 역시 아이들의 작은 일탈을 따뜻한 시선으로 감싸준다. 담임선생님(아베 히로시 분)도 코이치와 친구들의 어설픈 알리바이를 알면서도 모른 척 속아 넘어가준다. 구마모토에서 묵을 곳 없어 헤매는 아이들을 친손주들처럼 돌봐주는 노부부가 등장하는 것도 과연 저런 우연이 가능할까 싶지만, 그런 우연이 일어날 수 있을까 생각하기보다는 무작정 기적을 이루겠다며 먼 여행을 온 아이들의 순수함을 최대한 지켜주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게끔 한 것이 감독의 의도가 아니었을까. 여행이 끝난 후에도 어른들은 아무도 여행이 어땠는지 묻지 않는다. 내용이 전개되는 내내 아이들이 화면의 중심에 있고 어른들은 별다른 클로즈업이 없는 것도, 반짝반짝 빛을 내며 성장하는 아이들을 어른들이 빙 둘러 흐뭇하게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고레에다 감독은 <기적> 속에서 <아무도 모른다>가 아닌 <모두가 안다> 한 편을 다시 찍은 것 같은 느낌이다. 파울로 코엘료가 무언가 진정으로 원하면 온 우주가 너를 도울 거라고 <연금술사>에서 말했던 것처럼, 아이들의 소박하지만 가장 때묻지 않은 소원을 통해 그들을 성장시킨 우주는 기다리며 지켜볼 줄 아는 현명한 어른들이었다.


무엇이 감독의 시선을 이토록 따뜻하게 만들었을까. <아무도 모른다> 이후 6년 사이 실제로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 그에게 생긴 부성애의 확장이었을까. <씨네21> 김혜리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고레에다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주인공 코이치가 경험하는 부성은 두 가지다. 가루칸 떡을 만드는 외할아버지는 함께 살며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아버지상이다. 반면 따로 사는 아빠는 전화로 '네가 가족 말고 다른 것도 생각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음악이라든가 세계라든가'라고 말한다. 아버지란 뭔가 추상적인 것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어 변화와 성장을 촉구하는 존재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극 초반부 켄지(오다기리 조)와 코이치의 전화통화는 코이치의 성장에 중요한 촉매제가 되었으니(통화 당시에는 불평 투성이었던 코이치였지만), 결국 켄지는 일반적인 가장의 모습이 아닌 가장 켄지다운 방식으로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한 셈이다. <기적>의 주제가 성장의 기적, 플러스 '가족의 의미'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상엔 단 한 명도 똑같은 사람이 없고 동생 류가 '우리는 떨어져 있어도 보이지 않는 끈 같은 걸로 연결돼 있어'하고 말하듯, '아버지는 이러이러해야 하고 어머니는 저러저러해야 한다'라는 획일적인 틀에서 벗어나 각자의 방식대로 가족의 의미를 찾아 거기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어쩌면 더 현실적인 걸지도 모른다. 

   

상영관 수가 많은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기적>을 보고난 관객들의 입소문이 자자한 것은 주제의 아름다움 때문만은 아니다. 어린 배우들의 자연스럽고 때묻지 않은 연기, 그 순수함에 영화가 시작하면서부터 끝까지 극장 안에서는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한참 천진난만하다가도 중간 중간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는 아이들의 조금은 영악한 행동들도 <기적>의 매력이다. 가령 류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아빠 켄지를 앞에 앉혀놓고 "아빠는 내 덕에 아동수당 받으니까 새 기타는 다음달에 사고 이번 달은 나한테 반 떼어 줘"하고 말하는 부분이라든가, 낯선 아이들에게 친절을 베푼 노부부와 헤어지면서 칸나가 "저렇게 착해서는 사기 당할까봐 걱정이야"하고 말하는 부분 말이다. 특히 아빠 켄지가 류에게 인디음악을 하는 이유에 대해 세상에 꼭 필요한 것만 있으면 재미가 없다고 말한 후 류가 켄지에게 "그렇다고 불필요한 것만 있어도 안 되는 거잖아"하고 말하는 부분은 더하다. 실제로 고레에다 감독은 오디션에서 전국의 1000명 가까운 아이들을 직접 만나며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들에게 오히려 아이디어를 얻기도 했다고 한다. 아이들의 변화와 성장에 초점을 둔 영화이기에 어린 배우들의 연기에 따라 영화의 성격이 결정될 수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성공적인 결과라 할 만하다. <아무도 모른다>에서 이미 어린 배우들과 소통하며 자연스러운 연기를 이끌어낸 감독이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닌가 한다. 또 코이치와 류 역을 맡은 마에다 고키와 오시로가 실제 형제라는 점, 칸나나 렌토는 그들의 본명과 같은 이름의 역할을 연기했다는 점 등을 생각해보면 어린 배우들의 꾸밈없고 솔직한 연기가 가능했던 이유를 알 수 있다. 한편으로는 아이들 그들 스스로가 성장의 열쇠를 찾을 수 있도록 여러 어른들이 도와주고도 모른 척, 알면서도 속는 척하는 영화의 내용과 마찬가지로 현장에서 감독과 스탭이 그 어른의 역할을 잘 해내주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한 마디로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기적이 일어난 영화'
 
가족과 세계의 의미를 알아가기 위한 아이들의 고군분투, 그리고 성장의 기적.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2011 / 일본)
출연 마에다 코키,마에다 오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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