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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김씨표류기] 우리들은 모두, 저마다의 밤섬에 살고있다

(스포일러 다량 보유)


  한강 한가운데에서 표류를 한다? 

  영화 <김씨표류기>는 말그대로 '김씨'가 '표류'하는 내용이다. 어디에서? 한강의 '밤섬'에서. '도심 속 무인도'라는 설정에서 출발한 <김씨표류기>에서 '밤섬'이 가지는 공간적 의미는 영화를 보는 핵심 키워드라 할 수 있을만큼 크다. 철새 도래지로 유명해서 아무도 살지 않는 생태 보존 지역인 밤섬. 그 밤섬에 한 남자가 불시착한다.  

  터무니없이 늘어나는 대출 이자, 무한 경쟁 시대에 턱없이 뒤쳐지는 영어실력, 무능력을 이유로 냉정하게 떠나간 연인. '김씨'가 한강 다리에서 강물을 바라보며 뛰어내리기를 결심하는 이유다. 너무나도 익숙한(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한강 자살 사건의 모든 이유들을 총망라해 놓은 듯하다. 가장 보편적인, 소외된 현대인을 그리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성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다는 '김씨'가 아닌가. 어쨌거나 이 남자, 결국 물에 뛰어들지만 눈을 뜨고 보면 '드디어' 밤섬이다.  이 무인도에서 탈출하고자 유람선에 손도 흔들어보고 그나마 얼마 안남은 배터리마저 투자해가며 전화 통화도 몇 번 시도해보지만 어이없이 무시당하고 만다. 나무에 목을 매 죽어버릴까 생각하다가 우연히 맛 본 사루비아의 달콤함은 김씨로 하여금 모든 더러운 것들과 함께 그 동안 쌓였던 온갖 감정을 쏟아내게 하는데, 결국 그는 죽는 건 언제든지 할 수 있으니 일단 한 번 살아보자 결심한다. 그에게 밤섬은 정화의 공간이자(밤섬에서 표류한 몇 달 간의 정화라고 해두자) 그를 자살로 몰아넣은 모든 것들과 완벽히 분리되어 있는 은둔의 공간이다. 

  이 밤섬이라는 공간이 기가 막히게 아이러니하다. 바로 눈앞에 차가 다니고 건물이 솟아 있고 사람들도 보인다. 밤이 되면 온갖 조명 때문에 한강의 풍경은 눈부시게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씨는 밤섬 바깥 세상과 확실하게 차단되어 있다. 옷을 벗고 춤을 춰도,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도 아무 대답이 없다. 당장에 거기서 죽는다고 해도 개미 새끼하나 꿈쩍하지 않고 세상은 평화롭게 흘러갈 것처럼 보인다. 김씨의 처지가 딱 그런거다. 그리고 고독한 자본주의사회의 현대인이 그런거다. 사람들과 함께 살고 있지만, "나 힘들어요. 죽을 것 같아요. 아니, 진짜 나 죽어요." 아무리 소리쳐 봐야 뒤돌아봐 줄 사람 하나 없는. 김씨의 밤섬은 우리들 모두의, 아니 '각각의' 밤섬이다. 춥고 외롭고 배고픈 이 밤섬에서 얼마나 잘 적응해서 살아남을 것인가가 관건이다.    

  '김씨'가 무인도 생활에 적응해가는 과정이 제대로 웃기는데(기발한 발상에 가끔 신기하기도 하다), 정말 웃기긴 한데, 썩 유쾌하거나 즐거운 웃음은  아닌거다. '주택청약적금 7년 만에 내 집 마련을 꿈꾸다가 드디어 갖게 된 나만의 집' 오리배에서, 물 정화 시스템(영화에서 아주 살짝 보이지만 정수기 생수병을 거꾸로 놓고 돌을 쌓아놓은 게 분명 확실하게 보인다)을 만들고 고기 잡아먹고 새를 구워먹는 원시적인 생활을 아주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을 즈음, 할 일이 없어 지루해질 즈음, 김씨에게 아주 중요한 변화가 생긴다. 버려진 짜파게티 봉지에서 우연히 발견하게 된 분말스프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모래밭에 써 놓은 'HELLO'에 대한 답장으로 시작하는 와인병 펜팔에서 밤섬 밖의 누군가와 '소통'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끝없이 고독한 존재이면서도, 그렇기에 더욱 간절히 희망과 소통에 대한 갈망을 놓을 수 없다. 의식주를 해결하고 육체적 만족감을 얻고 나면 정신적인 만족감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이기에, 김씨는 면을 만들어 짜장면을 먹는 희망에 처절하게 집착한다. 고독에서 비롯되는 무기력함을 잊고자 함이다. 밤섬 바깥 세상과는 단절된 채 숨어사는 그 곳에서 모래밭에 김씨가 적어놓은 메시지는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소통에 대한 갈망인 것이다. 너와의 만남을 통해 내가 의미를 가지듯, 와인병의 답장을 발견하고는 계속해서 메시지를 남기는 김씨의 모습에서 우리는 "HELLO"가 "나 여기 있어요. 보이나요?"의 의미를 가지는 '만남', '소통'에 대한 욕구의 표출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잠시 시각을 돌려 이 와인병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또다른 김씨, 여자 김씨의 공간을 생각해 보자면, 3년째 방안에서만 생활하는 히키코모리 여자 김씨의 '방'이 가지는 의미는 남자 김씨의 '밤섬'이 가지는 그것과 같은 것이다. 방문만 열면 가족의 공간인 거실이 코앞이지만, 절대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자기만의 단절된 공간, 은둔의 공간이다. 다만 남자 김씨의 밤섬과 차이가 있다면, 여자 김씨가 남자 김씨를 알게 되기 전까지 그 공간은 '희망'이 없던 공간이라는 거다.

  그녀가 집중하는 일은 자신을 포장하고 또 포장한 채로 거짓된 자아를 형성하여 인터넷 가상 공간을 탐닉하고, 유일한 취미생활로 어떤 사람도 보이지 않는 달 사진을 찍는 일 뿐, 쓰레기더미가 한가득 쌓여있는 그녀의 방에서는 남자 김씨가 보여주는 것과 같은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그녀 나름대로는 '무질서 속의 질서가 존재하는 공간'이라 하지만, 그 질서는 말그대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변화없는 무의미한 일상생활의 기계적 매너리즘이다. 그러던 그녀가 바깥 세상으로 나오게 되는 건 남자 김씨의 밤섬을 발견하면서부터다. 호기심으로 시작한 남자 김씨 관찰하기는 그녀에게도 잠재하고 있던 '소통'에 대한 욕구를 표출하게 만들고, '짜장면 배달사건'을 통해 '희망'을 알게 한다. 남자 김씨의 '짜장면 만들기'는 여자 김씨의 '옥수수 키우기'로 이어지는데, 여자 김씨의 희망은 어머니와의 직접적 대화를 가능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갇혀 있고, 단절되어 있고, 그래서 외롭고 쓸쓸한, 현대인의 고독한 삶을 기발하고 신선하게 조명한 영화 <김씨표류기>. 폭풍우치는 날 밤 그 동안 마련해 놓은 모든 터전을 잃고 결국 순찰대에 의해 비참하게 끌려 나가는 남자 김씨의 모습과 그것을 지켜보던 여자 김씨가 세상밖으로 뛰쳐 나와 악수하는 마지막 장면은, 차갑게 흘러가는 현실 속에서 이제 그만 답답한 밤섬에서 벗어나 진실된 소통의 관계 속에서 희망을 찾고 '그래도'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조심스럽게 전하고 있다.  

김씨표류기
감독 이해준 (2009 / 한국)
출연 정재영,정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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