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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10억] 사람은 누구나 겁에 질려 살아가니까


(스포일러 다량 보유.)

 


특정 영화를 정확한 기준 없이 ‘총 평점 10점 만점에 몇 점’, ‘몇 점짜리 영화’ 정도로 평가 내려 버리는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 상당히 회의적이지만, 나름 열심히 본 영화에 대해서는 참고 정도로 흔히 짧은 감상평들을 찾아보기 마련이다. ‘평론’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내건 긴 글들보다는 그냥 ‘감상평’ 정도의 짧은 글들이 보편적이고 솔직하게 다가오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런데 한 영화에 대한 평이 이렇게 극과 극인 경우는 또 오랜만인 것 같다. <10억> 평점을 보면, 10점 만점 기준에서 1점부터 10점까지 중간 점수가 거의 없다. ‘뒷맛이 개운치 않은 영화...별로다(네이버ID:yyr0823hi)’, ‘케이블의 서바이벌 프로가 만 배 낫다(영화평론가 김종철)'와 같은 말이 있는가 하면 '매순간 땀을 쥐게 해서 정말 괜찮았는데(네이버ID:sanso5736)', ‘반전이 숨어있는 스릴 넘치는 영화(네이버ID:joy6792)’까지다. 그래서 이 영화에 대한 소박한 생각들을 글로 옮기기에 앞서 나는 내가 그 넓은 간격의 점수 차이 중 7~8점 정도의, 영화에 대한 상당히 우호적인 입장을 유지하겠다는 점을 조심스레 밝힌다. 2~3점 정도 깎은 이유는 1점정도의 낮은 평을 내리는 다른 이들에 대한 이해심 정도가 되겠다. 참고하시길.

일단 국내에서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스타일의 영화라는 점에서 눈길이 갔다(‘해운대’나 ‘국가대표’같은 영화들에 비해 홍보가 잘 안 돼서 ‘10억? 그게 영화제목이야?’라는 말을 참 많이들 했지만). 한국영화 소재로서는 신선하다. 처음에 ‘호주에서 10억을 놓고 벌이는 서바이벌 게임’ 정도의 얄팍한 사전 지식을 가지고 편안하게 영화를 보다가 ‘깜놀’했다. 탈락자가 죽게 되는 '진짜 서바이벌’이라는 사전 지식 없이 영화를 봐야 할 것 같다. 첫 번째 탈락자 최욱환(이천희 분)의 시체가 숲 속에서 끔찍하게 발견되는 그 장면에서 한 번 놀라고, 욱환의 시체를 보고 길길이 날뛰던 이보영(고은아 분)이 화살인지 화살 총인지에 한 방에 쓰러지는 장면에서는 허리를 곧게 폈다. 실제로 이 장면을 영화관에서 보면 다른 관객들의 긴장감까지 온 몸으로 느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어머, 죽였어?’, ‘어떡해’ 소리와 함께 침 넘기는 소리도 간간히). <10억>의 첫 번째 장점은 ‘영화에 몰입할 만한 긴장감 유발’이다. 서바이벌 게임의 참가자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수백 개의 몰래카메라로 일거수일투족이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된다. ‘몰입할 만한 긴장감’을 장점으로 꼽은 이유는 이 영화가 극한의 상황에 처한 인물들의 심리를 치밀하게 그려냄으로써 관객들이 몰래카메라 시청자로서의 위치에 있지 않고 그들 스스로가 게임 참가자들과 같은 처지에서 불안감과 공포, 답답함을 함께 느끼게 하는 데 성공했다는 거다.

또 하나는 시시각각 죽음의 공포와 맞닥뜨리는 게임 참가자들의 모습에서 긴장감을 느끼면서도 그들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서 인간 본연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는 점이다. 어떤 인간이든 100% 선할 수도, 악할 수도 없다. 결국 선과 악이라는 것도 살아갈 만큼의 딱 적당한 여유가 있을 때 할 수 있는 아주 상대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만약 사막에서 살기를 포기하고 물을 찾기 전에 쓰러져버린 하승호(김학선 분)를 위해 유진(신민아 분)이 물을 들고 다시 사막 길을 되돌아갔다면, 그래서 결국 둘 다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쓰러져 같이 죽었다면, 우리는 결코 그걸 선이라 부를 수는 없을 거다.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할아버지를 위해 뛰어내린 소년의 이야기를 생각해보자. 결국 소년이 할아버지를 구해 둘 다 살았거나 혹은 할아버지만이라도 살렸다거나 했기 때문에 소년을 영웅처럼 기사화할 수 있는 것이지 만약 둘 다 죽었다면 반응이 어땠을까. 너무 착해서 자기 몸까지 버려버린 안타까운 소년의 이야기정도가 되지 않을까.) 결국 우리는 모두 수연(유나미 분)의 대사처럼 ‘착한 척 하는 건지, 진짜 착한 건지’ 그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걷고 있을 뿐이다. 상황에 따라 착한 척이 되기도, 진짜 착한 게 되기도 한다. 둘 다 죽는 것 보다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승호를 두고 떠나는 것이 옳다고 말하던 한기태(박해일 분)를 악이라 부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영화는 계속 이런 비슷한 일련의 상황들을 극한의 상황 속에 잘 버무려 제시함으로써 관객에게 묻는다. “너라면 여기서 이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것 같아?” 관객들을 조마조마한 긴장감 플러스 ‘찔림’의 감정으로 몰아넣는다. 그리고 그 ‘찔림’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고, 그래서 더 ‘찔린다’.



서바이벌 게임이 진행되면서, 첫 번째 탈락자 욱환을 시작으로 탈락자들이 한명씩 차례로 죽어나간다. 욱환과 보영의 죽음 이후 나머지 참가자들은 필사적으로 게임에 참가하기를 거부하려 하지만 절대 게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게임에 참가하기를 거부하면서 결국 게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이 자체가 이미 영화의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기도 하다. 모두가 함께 살기 위해 착한 척 함께 이 죽음의 세계에서 탈출해보자고 하지만, 자신의 죽음이 바로 눈 앞에 왔을 때 그들은 나만 탈락자가 아니면 된다는 이기적인(‘이기적’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누구도 그들을 이기적이라고 비판할 수 없다는 게 찔린다.) 생각으로 결국 게임에 열심히 임하게 되는 거다. ‘게임 거부해서 다 죽느니 한 명만 죽으면 되는 거야. 이번 게임 잘해서 난 그 한 명이 아니면 되고.’ 탈락자들의 죽어나가고 남은 인원의 수가 줄어듦에 따라서 참가자들의 심리와 행동도 달라지는데, 이걸 발견하는 게 꽤 흥미롭다. 욱환과 보영의 죽음 앞에서 나머지 여섯 명의 참가자들은 얼마나 똘똘 뭉쳐 해결방안을 찾으려 했나. 그나마 인원이 많았으니까 다 살아나갈 수 있을 것 같았던 거다. 세 번째 탈락자인 승호가 죽고, 제일 자신만만해 보이던 수영선수 수연마저 처참하게 죽고 나니 이제는 불안해진다. 기태와 유진, 철희(이민기 분)와 지은(정유미 분) 네 명이 남아 오두막에서 서 기사(정석용 분)의 끔찍한 시체를 발견하고 나서는 그 불안함이 극에 달한다. 서로를 믿고 뭉쳐 다니던 처음의 마음은 온 데 간 데 없고 결국 기태와 유진, 철희와 지은은 둘씩 갈라지게 된다. 기다리기나 했다는 듯, 장민철(박희순 분)은 이들을 멀리 떼어놓는 데 성공한다. 오두막에서 단 둘이 남은 철희와 지은. 여기가 가장 ‘찔리는’ 대목일 거다. 오두막 저 구석에 10억의 돈 가방이 보이고, 옆에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철없이 나를 믿고 따르는 가녀린 여자 하나가 있고, 나는 해병대 나온 신체 건강한 남자인데다가, 오두막이라 보는 사람도 없고, 칼도 있고, 이 여자만 없으면 나는 10억을 들고 여기서 탈출할 수 있다. 이미 눈에 뵈는 것 없이 지쳐서 죽을 것 같은 그 상황에서, 10억쯤은 필요 없고 끝까지 이 여자 보호해서 여기를 빠져나가 지은의 말처럼 같이 영화도 보고 밥도 먹고 행복하게 살 거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피 묻은 칼과 돈 가방을 들고 오두막을 빠져나오는 철희를 보고 ‘그래도’ 관객들은 놀란다. ‘괜찮은’ 영화라고 말하고 싶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부분들이다.

이런 영화가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게 바로 ‘마무리’다. 보는 내내 ‘마지막 처리가 잘 돼야 앞에 신경 써서 해 놓은 이런 부분들이 잘 살 텐데.’했다. 혹자는 ‘뒷맛이 개운치 않다’라고 얘기들 하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아야’하는 게 맞다. 그래서 마무리 처리가 잘 됐다고 하고 싶다. 개운치 않으니까. 만약 반전 없이 그냥 유진의 말대로 절대 죽을 것 같지 않던 장민철이 유진의 총 한 방에 어이없이 바다에 떨어지고 유진이 혼자 살아남아 병원까지 오게 된 거라면, 얼마나 시시한가. 장민철이 일종의 거래를 하게 된 서바이벌 게임의 마지막 생존자가 ‘유진’이라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세 번째 탈락자였던 승호가 죽고나서 ‘하루 더 살게 되니까 그렇게 좋아! 좋냐구!’ 악을 쓰며 바락바락 수연에게 따지던 바로 그 여자 유진이 10억 가방을 챙겨 유유히 사라지는 마지막 장면은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큰 줄기를 마지막까지 놓치지 않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장민철이 애초에 서바이벌 게임을 기획하게 된 이유가 밝혀지는 부분도 그렇다. 그 잔인하고 혹독한, 엄청난 서바이벌 게임의 이유가 결국 자기 아내의 죽음을 방관한 자들에 대한 복수였다는 사실이 너무 ‘삼류’라느니, ‘말이 안 된다’느니 하는 평들을 자주 읽었는데, 사실 소중한 사람을 끔찍하게 잃은 고통과 그것으로 인해 생긴 세상에 대한 분노, 복수심만큼 인간을 잔인하게 만들 수 있는 게 또 있을까.(그 광활한 호주 땅에서 수백 개의 몰래카메라를 설치하고 서바이벌 게임의 모든 과정 하나하나를 장민철 한 사람이 치밀하게 계획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판타지같이 느껴질 만큼 억지스러운 부분들도 있다. 그렇지만 영화 ‘데드캠프’시리즈에서 여행자들을 하나씩 죽이는 살인마들이 단지 유전적으로 끔찍한 행위를 할 수밖에 없도록 태어났다는 그런 식의 이야기보다는 훨씬 현실적이지 않나.) 거기다 장민철이 서바이벌 게임 참가자들을 의도적으로 고른 이유가 죽음의 ‘방관자’들이기 때문에 앞서 말한 영화의 큰 줄기와도 잘 연결된다. 바로 앞에서 피흘려가며 죽어가는 여자를 보고도 여덟 명이나 되는 사람이 아무 것도 돕지 않았다는 것. 겁에 질려 자기 몸 챙기기 바빴다는 것. 기태는 그 상황에서 직업병을 발휘해 그 잔인한 장면을 카메라에 담아 제보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 그 모든 상황들은 서바이벌 게임에서 여덟 명의 참가자들이 나만 탈락자가 아니면 된다는 생각으로 게임에 임하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데, 어쩌면 이 세상은 거대한 서바이벌 게임장일지도 모른다는 거다. ‘사람은 누구나 겁에 질려 살아가니까.’ 결국 장민철은 어떻게 여덟 명이나 되는 사람이 힘없는 자기 아내가 죽어가는 걸 보고도 단 한명도 돕지 않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자기가 기획한 서바이벌 게임에서 정확히 확인하고 그 허무함에 자살한 걸지도. 인간이 그런 거니까. (영화평론가 이동진은 그래서 이 영화를 ‘이토록 황폐한 염세주의’라고 평가한 거겠구나 싶다.) 장민철과 조유진 사이에 오간 일종의 거래가 절대 정당화될 수 없을 것 같으면서도 그들은 악역이라 부를 수도 없는 그 '이유'가 바로 영화가 끄집어내고자 한 이야기일 거다. 

어쨌거나, 영화 <10억>은 꽤 볼만하다. 시기가 시기인 만큼 <해운대>나 <국가대표>같은 영화들과 비교하게 되는데, <10억>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의미’가 분명 있다. 제대로 긴장하고 제대로 찔리다보면 114분짜리 영화를 10분 만에 본 것 같은데, 다시 114분 정도를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영화다.

10억
감독 조민호 (2009 / 한국)
출연 박해일,박희순,신민아,이민기,정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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