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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완득이] 그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월간 <마음수련> 2012년 1월호에 기사화되었습니다.)


어떤 영화의 주연배우 '캐스팅' 소식을 듣고 이 영화만큼 기대가 커졌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2008년 여름 카페에서 무심코 집어든 <완득이>를 한 자리에 앉아서 다 읽었었다. 그만큼 쉽게 읽힌 책이기도 하지만, 그건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어떤 작품보다도 분명했던 데다가 어느 하나 매력이 없는 인물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읽는 내내 동주 역에 김윤석 아저씨, 완득 역에 유아인을 혼자 캐스팅하고 장면을 상상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책을 읽으면서 머릿속에서 상상한 인물들이 그대로 캐스팅되어 영화화된다는 것은 독자에게, 그리고 관객에게 마치 감독이 된 듯 영화에 애정을 가지게 하는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캐스팅 소식을 접하고 영화가 개봉하기까지 이 장면 저 장면 혼자 생각하면서 꽤 즐거웠던 것 같다.


책을 영화화하는 것은 언제나 쉽지 않다. 이미 기본적인 스토리를 알고 있는 다수의 관객들이 시퍼렇게 눈을 뜨고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영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무언가'를 반드시 보여주어야 한다는 압박감, 뭐 그런 게 있기 마련이고, 그 압박감을 이겨내고 보란듯이 제대로 된 성과를 내 보인다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이한 감독의 이전 작품들 '내사랑'이나 '청춘만화'를 들여다보면, 아기자기하고 감수성이 풍부하지만 그저 그렇고 그런 따뜻함 그 이상을 보여주지 못해 아쉬웠던 기억이 나서 사실은 꽤 걱정도 됐다.

영화가 개봉하고 나서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찌개 뚜껑을 열어보니, 보글보글 잘 끓인 된장찌개의 구수한 향기가 코를 찌른다. 맛도 기가 막히다. 오랜만에 진하게 사람냄새나는 착한 영화를 만났다. 이한 감독이 끓인 그 흔하디 흔한 된장찌개는 짜지도 싱겁지도 않게, 그런데 들어가야 할 건 다 들어간 진국의 맛을 보여줬다. 주연배우들은 말할 것도 없고, 늘 욕을 입에 달고 살지만 욕조차 정겹게 느껴지는 '앞집 아저씨' 김상호, 무협소설을 쓴다며 직접 방안에서 창문을 열어놓고 무술을 연마하다가 동주를 유혹하는 묘한 매력의 '호정' 박효주, 완득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준 킥복싱 '코치' 명품 조연 안길강,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 '남유준' 역으로 여심을 사로잡았던 '민구 삼촌' 김영재 등 풍부한 맛에는 풍부한 재료가 있기 마련.  

언제부턴가 교육계에서, 심지어 예능에서까지 '멘토' 열풍이 불어온 것은 '스승'이라 부를 수 있는 인생의 조언자를 간절하게 그리워하는,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르는 무한경쟁 시대의 불안정한 청춘들의 모습을 반영한다. 그래서 동주의 캐릭터가, 완득의 캐릭터가 우리의 가슴을 울린다. 완득에게 동주는 스승이자 멘토였고, 친구였다.

'그가 나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나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를 패러디한 광고 카피처럼, 동주는 도완득의 이름을 끊임없이 불러댄다. '얌마, 도완득!'하는 그 목소리가 정겹다. 완득은 그럴 때마다 '그가 나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내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고 외치며 동주를 없애달라 기도한다. 그렇지만 '얌마, 도완득!'하는 그 부름은 사실 꼬여도 한참 꼬여 엉켜있는 완득의 삶을 동주가 자신의 투박한 손으로 천천히 함께 풀어보겠다는 인간미 넘치는 구원의 손길인 셈이다.

교사가 학교에서 폭력을 휘두르고, 학생은 교사를 경찰에 신고하는 것도 모자라 여교사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야간자율학습'은 '야간강제학습'이 된 지 오래고, '공부는 학원에서 시험은 학교에서'는 더 당연하고, 한 번 문제아로 낙인 찍힌 이는 영원히 문제아다. <완득이>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만큼 찌뿌둥한 현실에 어퍼컷을 날리고 희망을 외친다.  

 곱추 등으로 시장을 돌며 춤을 추는 아버지와 필리핀에서 시집 온 어머니 사이에서 완득은 세상에 등을 돌리고 스스로 외톨이가 되지만, 동주의 도움으로 천천히 세상에 한 걸음씩 발을 내딛고 소통을 시작한다. '햇반 하나 던져봐라' 할 때처럼 툭툭 뱉는 그 말투로 동주는 완득에게 필요한 조언들을 또 툭툭 던진다. 그러나 '가난을 부끄러워할 게 아니라 가난을 부끄러워했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느끼게 될 거다, 신체적인 장애가 아니라 정신적인 장애를 가진 부모들이 세상에 더 넘쳐난다, 대학교가 대학이 아니라 세상이 대학이다'하는 동주의 대사들은 결코 가볍지 않다. 

영화에 등장하고 있는 모든 인물들은 소외된 약자다. 필리핀에서 시집 온 완득의 어머니를 비롯한 외국인 노동자들, 곱추 등을 가진 완득의 아버지, 캬바레에서 꽃을 팔다가 가족이 된 저능아 민구 삼촌, 가난한 욕쟁이 화가 앞집 아저씨, 무협 작가 호정. 그리고 여기에 사업가 아버지의 든든한 뒷배경조차 마다한 채 외국인노동자들을 위해 일하는 사회 교사 동주가 있다. 편하게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혜택을 다 던져버리고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앞장서서 개념있는 오지랖을 넓히고 있는 동주의 모습은 소위 '강남좌파'라 불리는 일부 지식인들의 모습과 사뭇 다르다. 물론 동주에게 잘나가는 사업가 아버지라는 존재는 그가 어떤 방식으로 불합리한 사회에 반항하든 그를 지켜줄 방패같은 역할이 되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지만, 그에게는 그의 가치관을 잃지 않고 살아가겠다는 '깡'과 '진심'이 있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것은 '춤'이다. 영화는 완득 아버지가 곱추 등을 한 채 캬바레에서 탭댄스를 추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캬바레가 없어지고 나서도 완득 아버지와 민구 삼촌은 오일장을 돌며 춤을 추면서 생계를 이어간다. 젊은 시절 춤을 '예술'이라 생각했다던 완득 아버지에게 이제 춤은 자신의 유일한 희망인 완득을 위해 가장으로서 할 수 있는 마지막 생계수단이 되었다. 모든 갈등이 해소된 후, 완득의 집에는 온 가족과 이웃들이 모여 서로를 응원하며 조촐한 잔치를 벌인다. 한 잔 걸친 채 신나게 춤을 추는 장면을 슬로우 모션으로 보여주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이 짧은 영화가 주려는 짧지 않은 메시지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게 된다. 영화에서 춤을 통해 무언가를 강렬하게 느꼈던 경험은 봉준호 감독 <마더> 오프닝과 엔딩씬 김혜자의 춤이다. 그러나 김혜자의 춤이 응어리 진 '한(恨)과 죄의식의 살풀이'와 같은 기능을 했다면, <완득이>에서의 춤은 '희망'과 '화해', 그리고 '가족애'다.

과감히 원작을 뛰어넘은 성공적인 영화라고 하기엔 원작 스토리 자체가 과감해질 만한 스토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보여주어야 할 것, 갖추어야 할 것 플러스 두 시간짜리 영화이기에 가능한, 소박하지만 꽤 찡한 카타르시스까지 딱히 부족한 것을 찝어낼 것이 없는, 아니 어쩌면 찝어내고 싶지 않은 영화였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 만족스럽다.  


완득이
감독 이한 (2011 / 한국)
출연 김윤석,유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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