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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하나미즈키] 동화같은 감성으로 이어놓은 '건축학개론, 그 후'

 

 

'건축학개론'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면,

'하나미즈키'는 어떻게든 인정하고만 싶은 환상이다.

그 어떤 짖궂은 운명에도 진실한 사랑은 돌고, 돌고, 돌아 제자리를 찾아 돌아온다는 게 노부히로 감독이 놓아버리고 싶지 않은 어떤 신념 같은 건가 보다. 아니, 어쩌면 이미 다들 놓아버린 것들을 끌어모아 오랫동안 영화에 담아놓고 싶은 게 그의 신념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2004)의 감독 도이 노부히로가

그의 스타일대로 완전히 바꿔놓은 '건축학개론'을 본 것 같은 느낌.

동화같은 감성으로 이어 놓은 '건축학개론, 그 후의 이야기'까지

 

'건축학개론'의 승민(엄태웅 역)은 부서져버린 대문을 부여잡고 되돌릴 수 없는 과거를 인정하며 흐느낀다. 승민이 결국 은채(고준희 역)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하나미즈키'의 코헤이(이쿠타 토마 역)도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첫사랑 사에(아라가키 유이 역)를 뒤로 하고 당장 책임져야 할 가족과 가난 앞에 마주한다.

사에 옆엔 '건축학개론'의 돈많은 강남오빠와는 비교도 안되는 준이치(무카이 오사무 역)가 있고, 코헤이 옆엔 '건축학개론'의 은채보다는 덜해도 코헤이와 그의 가족에게 헌신적인 리츠코(렌부츠 미사코 역)가 있다. 그러나 사에와 코헤이가 이별한 뒤에도 서로를 향한 그리움에 견딜 수 없어할 즈음, 준이치는 불의의 사고로 죽음을 맞이하고 리츠코는 외로움과 가난에 못이겨 코헤이와의 이혼을 결정하고 떠난다. 참을 수 없는 비현실적 설정이 바로 여긴데, 마치 주인공의 아름다운 재회를 위해 조연들이 제 때에 '죽어주고, 떠나주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단언컨대 이 부분을 참을 수 없어 하는 이들에게 '하나미즈키'는 삼류 연애소설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도이 노부히로 감독의 작품이기에 '하나미즈키'를 선택했거나,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2007), '내 첫사랑을 너에게 바친다'(2009)'하프웨이'(2009), '너에게 닿기를'(2010)과 같은 종류의 일본 하이틴로맨스물 매니아라면, 비현실적인 설정에도 불구하고 결말을 얼마나 기억에 남게 그릴 것인가에 기대한다.

그 말도 안되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이만큼의 변명을 하는 이유는 엔딩 장면 때문일지도(덕분일지도) 모른다. 캐나다에서 사에의 메시지를 보자마자 방황을 끝내고 고향에 돌아온 코헤이와 사에의 대사는 아마 이 영화를 떠올릴 때마다 잊을 수 없는 장면이 될 것 같다. 산딸나무 잎이 흩날리는 가운데 '어서 와', '다녀왔어'의 두 마디에 함축되는 그 긴 여정의 마무리는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과거 회상 엔딩이나 '눈물이 주룩주룩'(2006)의 가을동화식 엔딩보다 훨씬 여운이 깊다.

이렇다 저렇다 얘기할 거 없이, 그래도 나는 그냥 이런 종류의 영화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한다. 간지럽고 진부한 걸 간지럽고 진부하다고 생각하지 않게 하는, 언젠가 있었을 사춘기의 눈물과 설렘을 가장 예쁜 그 모습 그대로 박제해 놓은 듯한 이런 종류의 영화들. 그리고 나이가 한참 더 먹어도 언제든 이런 영화를 보고 한꺼번에 밀려오는 지난 그리움에 가슴이 찡해지는 순간이 있었으면 한다.

+) 수건을 두르고 고기를 잡는 이쿠타 토마는 '마을에 부는 산들바람'에서 카호를 짝사랑하던 하얀 얼굴의 오카다 마사키나 '너에게 닿기를'에서 체육복 입고 활짝 웃던 미우라 하루마만큼이나 매력있었다는 사실!


하나미즈키

Hanamizuki 
5.8
감독
도이 노부히로
출연
아라가키 유이, 이쿠타 토마, 렌부츠 미사코, 아라타, 키무라 유이치
정보
로맨스/멜로, 드라마 | 일본 | 128 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