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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키팅선생, 포레스터, 그리고 김지수



  해마다 돌아오는 스승의 날이지만, 올해는 유난히 많은 생각이 든다. 공교육붕괴, 입시전쟁, 학원폭력, 집단성폭행, 촌지 등의 단어가 너무도 자주 들어 지겹기까지 할 정도다. 학생들에게 비인간적 체벌을 가하는 교사, 그리고 그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 교사를 경찰에 신고하는 학생과 학부모들. 잠잠해진다 싶을 때면 꼭 한번씩 나오는 기사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기억하나. 진절머리나는 우리 교육 현실을 생각하다보니 "캡틴, 마이 캡틴" '키팅 선생(로빈 윌리암스 분)'이 보고싶어졌다. 영화의 배경이 되고 있는 명문 웰튼 고등학교는 학생들에게 '명문'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프라이드를 주입시키며 오로지 '일류대학 입학'의 목표만을 강조한다. 자아를 발견하며 고민하고, 자신의 적성을 찾고, 마음으로 느끼며 공부하는 것은 '탈선행동'일 뿐이다. 이 학교에 키팅 선생이 부임한다. 첫 수업 시간부터 키팅 선생은 파격적이고 자유로운 방식의 수업을 진행한다. 책상 위에 껑충 올라가 사물을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는 즐거움을 즐기라고 말하고, 시를 느끼기보다는 분석하는 데 초점을 두었던 시험준비용 교과서는 찢어없애라 말한다. "까르페 디엠"을 외치며 학생들이 자신의 숨어 있는 재능을 끌어낼 수 있도록 격려한다. 한 학생이 키팅 선생의 수업내용을 열심히 필기를 하면서 "이것도 시험에 나오는 건가?"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모든 공부는 시험공부다.'라는 현실의 학생들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죽어있는 지식을 받아들이기에만 급급했던 학생들은 점차 키팅 선생에게 호감을 느끼며 평소에 알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설레임으로 가슴 벅차 한다.

  이런 장면이 있다. 수줍음이 많아 마음 속에 있는 것들을 드러낼 의지를 보이지 않던 전학생 토드(에단 호크 분)가 자작시를 발표하라는 키팅 선생의 요구에 수없이 써왔던 시들을 감춘 채 시를 써오지 않았다고 말한다. 키팅 선생은 토드를 학생들 앞에 세우고 눈을 가리게 한 뒤 박수를 치고 소리치며 토드의 마음에 짓눌려 있던 감성을 언어로 풀어낼 수 있도록 돕는다. 한 편의 멋진 자작시를 즉석으로 지어낸 토드는 그 순간의 황홀함을 잊지 못한다. 억지로 주입시키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에게 잠재되어 있는 어떤 것을 발견하고 이끌어낼 수 있는 것.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잊을 수 없는 장면이다.
 
  그리고 마침내 토드를 비롯한 일곱 명의 학생들은 키팅 선생이 고등학교 시절 속해있던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서클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고, 그 서클을 이어가기로 한다. 학생들은 학교 뒷산 동굴에서 몰래 모임을 갖으며 억눌려있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닐(로버트 숀 레오나드 분)은 연극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발견하게 되고, 녹스(조쉬 찰스 분)는 크리스(알렉산드라 파워스 분)라는 소녀와의 사랑을 이루어 간다. 

  혹자는 이 영화가 몽상적이라는 생각이 들만큼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비현실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영화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예기치 않은 학생의 자살로 인해 '죽은 시인의 사회' 서클이 발각되고, 키팅 선생은 그 책임을 지기 위해 학교를 떠나게 된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키팅 선생이 학교에서 쫓겨나게 된 것이 단순히 학생의 자살 때문이 아님을 안다. 애초부터 키팅 선생의 남다른 수업 방식과 교육관은 기존의 '명문대학교 학생 배출 시스템' 안에서는 매우 탈선적인 것일 뿐이고 인정받을 수 없는 것이었다. 여기에 분명 '현실'이 있다. 영화가 단순히 키팅 선생의 교육관을 찬양하고 있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특정한 교육관이 아무리 올바른 것이라 하더라도 현실을 무시한 채로는 그것을 실현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키팅 선생의 교육관은 기존의 교육방식과 괴리를 일으켜 한 학생을 자살로 몰아간 것임에는 틀림없다. 영화는 '키팅 선생의 교육관을 현실 속에서 어떻게 제대로 실현할 수 있을 것인가, 한 개인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교사와 학생, 그리고 정책을 마련하는 교육행정가들이 키팅 선생의 '필요성'을 절감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이 변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키팅 선생 한 두명 나타나 아무리 혼자서 노력을 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교육부에서 내놓는 교육 정책 방안을 살펴보면 언제나 '학생들의 적성 계발', '창의성 계발', '자아의 발현과 도덕성 향상' 등 이루 셀 수 없이 많은 교과서적 단어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현실속에서 그 의미가 제대로 발현되고 있는가.  영화가 보여주는 '학생의 자살'은 상반되는 교육방식들이 얽히고 섥혀있게 되면 학생들에게 오히려 혼란을 가져다 준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파인딩 포레스터>라는 영화도 있다. 길거리 농구를 즐기는 고등학생 자말 윌러스(로버트 브라운 분)는 매일 창밖을 내려다보다가 숨어 버리는 이상한 노인에 대한 호기심으로 그 집에 몰래 들어갔다가 가방을 둔 채로 뛰쳐나오게 된다. 다음 날 가방을 찾아온 자말은 가방 속에 들어있던 자신의 글들에 달려진 코멘트들을 발견하고는 매일 그 집을 찾아가게 된다. 노인은 40년전 퓰리처상에 빛나는 소설을 집필했으나 그 이후로는 세상을 등지고 혼자서 숨어 살아가는 천재작가 윌리암 포레스터(숀 코네리 분). 포레스터는 자말의 문학적 재능을 이끌어내기 위해 몇 십년간 혼자 살아온 자신의 집에 자말을 받아들이게 되고, 포레스터와 어린 제자 자말은 그 공간에서 끊임없는 문학적 논쟁을 펼치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서 자말은 문학적 열정을 점점 더 키워나가며 맨하튼의 명문학교에 스카우트 되기에 이른다. 영화의 뒷부분에 이르러서는 포레스터가 자말의 문학적 열정에 감동받아 세상으로 다시 나아가게 되는 힘을 얻게 된다. 포레스터와 자말은 스승과 제자로서, 그리고 문학적으로 교감하는 친구로서 함께 성장해 나간다.

  사실 이 영화는 교육학 교수님, 교육학과 학생들과 함께 보게 된 영화다. 영화를 본 후, "1:1 방식의 자유로운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 교육 현실 속에서는 스승과 제자가 교감을 형성해가며 신뢰를 쌓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문학적 재능을 타고난 학생과 문학 천재인 스승이 만났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을 뿐이다. 아주 잘 된 케이스다."라는 등의 반응이 나왔다. '비현실적'이라는 거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참된 교육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스승과 제자가 서로간의 신뢰감을 형성해야 하고, 위계적인 관계가 아니라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관심과 애정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교육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에서는 피아니스트를 꿈꿔왔지만 지금은 평범한 피아노 학원 선생님을 하고 있는 김지수(엄정화 분)가 말썽꾸러기 소년 윤경민(신의재 분)의 음악적 재능을 발견해내는 과정을 그린다. 영화 초반부에서 지수는 천재소년을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키워 자기 자신 또한 명성을 떨치고자 하는 꿈에 사로잡혀 있지만, 영화가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경민의 재능을 발견하게 되면 될수록 그 재능을 더 키워주기에는 지수 자신의 능력이 부족함을 인정하게 된다. 결국 지수는 경민이 더 넓은 세상에서 음악을 공부할 수 있도록 외국으로 보낸다. 영화는 경민의 재능을 발견해 이끌어주는 지수를 그리면서, 동시에 지수의 정신적 성장도 함께 그린다. <파인딩 포레스터>에서 포레스터가 자말을 통해 세상에 대한 자신의 두려움을 잊고 다시 세상에 나아가게 되는 것처럼, 지수 또한 경민을 통해 자신의 열등감과 허황된 꿈을 씻어버리게 된다. 


  교육분야에 관련된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영화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다 아는 얘기지만 현실 속에선 불가능하다.'라는 생각보다는, 세 영화에서 공통적으로 시사하고 있는 메시지를 발견해 내고. 옳은 것을 옳게 실현할 수 있는 현실을 만들기 위해 진심으로 고민할 수 있는 자세가 지금의 교육 현실 속에서 절실히 필요하다. 

또다른 키팅 선생과 포레스터, 그리고 김지수가 더 많은 닐, 자말, 경민을 발견해 낼 수 있도록 말이다. 

 
죽은 시인의 사회
감독 피터 위어 (1989 / 미국)
출연 로빈 윌리엄스,로버트 숀 레오나드,에단 호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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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딩 포레스터
감독 구스 반 산트 (2000 / 미국)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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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로비츠를 위하여
감독 윤종구,권형진 (2006 / 한국)
출연 엄정화,박용우,신의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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